조선

1392~1910년까지 한반도와 부속 도서를 통치한 왕국.

건국과 천도

주도 세력

* 신흥 무인 세력 (이성계) * 신진 사대부 (정도준, 조준 등)

과정

1. 위화도 회군

  • 명나라 치라고 보내놨더니 하라는 토벌은 안하고 장마철을 기다리며 느적느적 기어가더니 압록강의 위화도에 갔을 무렵 장마철이 되니까 '강이 불어서 못 건너요' 하면서 군사를 되돌려버리곤 붙여준 군사들로 고려를 엎어버렸다.

2. 과전법 실시

  • 권문세족들의 농장 해체, 신진 사대부들에게 토지 나눠줌 (신진 사대부 경제기반 마련)

3. 이성계 추대 4. 조선 건국 (고조선 계승의식) 5. 한양 천도

  • 한반도 중앙 위치
  • 한강 (농업 생산 풍부, 인구 밀집, 무역/외교/조세 유리)
  • 방어 유리 (산)
  • 풍수지리설 영향 (남경길지설)

의의

1. 새로운 지배층 : 신진사대부 (양반)

  • 혈연이나 가문 중시하는 사회에서 개인의 학식이나 능력을 보다 중요시하게 됨

2. 새로운 지배이념 : 성리학 (유교)

  • 어진 정치, 민본 정치
  • 왕은 백성을 위하며 공부하며 어질고 인자해야 한다. (ex. 세종, 정조 등)

국가 기틀 마련 및 영토 확장

왕권 강화 및 조선 초기의 대외 관계

태조 이성계 재위 당시에는 신진사대부의 정도전이 실권을 장악했으며 태조의 둘째 부인의 막내(요컨대, 신하들 입장에서 만만한 놈)을 세자로 만드려 한다. 여기서 태조 첫째 부인의 자녀들의 심정에 주목해보자. 건국 당시 실질적인 공을 세운 이들인데 이런 상황이 달갑겠는가. 그렇다면 누구를 제거하면 이 상황을 엎을 수 있을까? 이 일은 조선이 신하가 큰소리 치는 나라가 되길 원하는 정도전, 자식을 왕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둘째 부인이 작당한 것이다. 세자가 된 둘째 부인의 아들들을 제거하면 어떨까? 하지만 이들은 지금 왕의 총애를 받고 있는 상태다. 그러면 둘째 부인은 어떨까? 왕비나 왕을 제거한다는 것은 민심을 버리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정도전이다. 정도전을 역적으로 몰아버리고 제거해버린다면 문제가 될 것이 없다. 그렇게 정도전은 역적으로 몰려 제거당했고 첫째 부인의 자녀들은 어린 세자를 몰아낸다. 이때 정변을 일으킨 이방원(태종)은 정종을 이어 즉위한 후 왕권 강화에 힘쓴다.

1. 6조 직계제

  • 6조가 의정부 밑에 있으면 의정부가 왕 말을 듣지 않을 때 왕 입장에서 답이 없다.
  • 시행 이전에는 왕 직속 부서로 의정부만 있고 6조가 의정부의 직속 부서였던 반면, 시행 이후 의정부와 6조 모두가 왕의 직속 부서가 되었다.

2. 사병 폐지

  • 고려 시대에는 지방 세력이 사병을 가지니 왕권이 말이 아니었다. 또 직접 정변을 일으킨 경험이 있는 태종의 입장에서는 왕 이외의 세력이 병사를 지니는 것이 반가울리가 있겠는가.

3. 호패법

  • 조세, 군역에 활용
  • 각 지역 관청에서 주민들 정보 파악함

4. 명과 사대관계

  • 정치적 안정을 얻었다. 물론, 사대관계라는 것이 조선이 중국의 속국이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조선은 독자적으로 왕을 선출했으며 독자적으로 주요 관료들을 선출했다. 때문에 조선이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없다.
  • 교류를 통한 선진 문물의 수용, 경제적 실리를 취했다. 조공무역이라는 것인데, 조선이 조공을 바치고 중국이 비단이나 고급 약재를 하사하는 형식이다. 명색이 큰 나라인데 조공을 바쳐오는 나라에게는 더 큰 보상을 안겨주고 돌려보내야 하지 않겠는가? 이렇듯 조선이 실리를 챙기는 형태의 무역이다보니 중국은 조선에게 3년에 한 번 조공을 바치라고 요구했으나 조선이 자처해서 1년에 세 번 조공을 바치겠다고 하는 모양새가 되버린 것이다.
  • 일본, 여진, 류큐 등 이웃나라와는 대등한 입장에서 사귄다는 교린관계를 맺음 (토벌과 교류를 병행하였다)

유교 정치의 발전과 영토 확장

태종이 '정치적 안정'을 이루었다면 세종은 그를 바탕으로 '유교 정치'와 '민족 문화'를 발전시켰다. 세종은 경연에 나아가 스스로 수양하였으며 원래는 신하들이 왕에게 잔소리를 하는 시간이었는데, 세종의 경우에는 되려 그 반대였다고 한다 '집현전'을 설치해서 학자들을 양성했다. 또한 세종은 집현전의 학자들을 통해 각종 의례와 제도를 정비하고 각종 편찬 사업을 전개했다.